한약국에 갔다가 평소 찾던 영양제를 살 수 없어 당황한 적 있으신가요? 혹은 한의원에서 처방받은 첩약을 두고 한약사와 한의사의 역할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던 적은 없으신가요? 이러한 일상 속 작은 궁금증과 불편함의 중심에는 ‘대한한약사회’와 ‘한의사’ 간의 오랜 업무 범위 갈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약사법의 모호한 규정 속에서 수십 년간 이어진 이 논쟁은 단순히 두 직능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과 의약품 선택의 편의성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제는 갈등을 넘어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상생의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한약사회-한의사 갈등 해법, 핵심은 이것
- 명확한 법과 제도 정비: 약사법을 개정하여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 및 첩약 조제 권한 등 모호한 업무 범위를 명확히 규정해야 합니다.
- 직능 간 소통 협의체 구성: 대한한약사회, 대한한의사협회, 약사회, 정부 부처가 참여하는 공식 소통 채널을 만들어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갈등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 한약 관리 시스템의 과학화 및 현대화: 첩약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하고, GMP 기준에 따른 한약재 품질 관리와 유통이력추적제를 통해 안전성과 신뢰도를 높여야 합니다.
갈등의 씨앗, 모호한 약사법 들여다보기
현재 약사와 한약사 간의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약사법의 ‘입법 불비(立法不備)’, 즉 법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미비한 상태에 있다는 점입니다. 약사법에 따르면 약국 개설자는 약사 또는 한약사가 될 수 있으며, 약국 개설자는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한약사는 ‘한약과 한약제제에 관한 약사 업무’를 담당한다고 명시되어 있어, 한약사가 취급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해석의 여지를 남깁니다. 이로 인해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를 두고 한쪽에서는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면허 범위를 벗어난 행위라며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법적 회색지대는 결국 소비자들의 혼란과 불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해법 1 명확한 법적·제도적 기틀 마련
가장 시급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약사법 개정을 통해 한약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입니다. 현재 국회에는 약사와 한약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 규정을 두는 내용의 법안이 계류 중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일반의약품 판매 가능 여부를 넘어, 한약제제의 분류 기준을 현대화하고, 첩약 조제에 있어 한약사의 역할을 명확히 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의약품을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으로만 나누는 현행 체계에서 ‘한약제제 일반의약품’ 카테고리를 신설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각 직능의 전문성을 존중하면서도 국민이 안전하게 의약품을 선택하고 복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소통 부재가 키운 불신, 협력의 길은?
오랜 기간 이어진 갈등은 직능 간 깊은 불신을 낳았습니다. 대한한약사회는 약사 사회에 상생을 제안하는 서신을 보내기도 했지만, 입장 차이를 좁히기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또한,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과 같은 주요 정책 추진 과정에서 한약사가 배제되는 듯한 모습이 보이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국민 건강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전문가 집단이 서로를 경쟁 상대로만 인식하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소모적인 논쟁을 멈추고 머리를 맞대야 할 때입니다.
해법 2 상생을 위한 소통 협의체 구성
갈등 해결의 실마리는 결국 ‘소통’에 있습니다. 대한한약사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그리고 보건복지부, 식약처 등 정부 기관이 모두 참여하는 공식적인 정책 협의체를 상설 기구로 운영해야 합니다. 이 협의체를 통해 한약 관련 정책 및 제도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각 직능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한약사 직능의 발전을 위한 정책 제안부터 국민 보건 증진을 위한 공동 캠페인까지, 다양한 안건을 논의하며 협력의 기반을 다져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장치가 될 것입니다.
해법 3 한약 시스템의 과학화와 신뢰 확보
국민이 한약과 한약사를 신뢰하기 위해서는 한약의 안전성과 품질을 보증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우수 한약재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GMP)을 엄격히 적용하고, 생산부터 유통, 조제에 이르는 전 과정을 투명하게 추적할 수 있는 ‘유통이력추적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또한, 첩약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것은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한의약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정책입니다. 최근 정부는 기존 3개 질환에 더해 알레르기 비염, 기능성 소화불량 등 다빈도 질환을 포함한 총 6개 질환으로 첩약 건강보험 2단계 시범사업을 확대 시행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한약의 조제와 유통 과정을 현대화, 과학화, 표준화하여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구분 | 1단계 시범사업 | 2단계 시범사업 |
|---|---|---|
| 대상 질환 | 월경통, 안면신경마비, 뇌혈관질환 후유증 (65세 이상) | 기존 3개 질환 + 알레르기 비염, 기능성 소화불량, 요추추간판탈출증 (뇌혈관질환 후유증 연령 제한 없음) |
| 대상 의료기관 | 한의원 | 한의원, 한방병원, 병원 및 종합병원(한방 진료과목 운영) |
| 건강보험 적용 | 연간 1개 질환, 10일까지 | 연간 2개 질환, 각 20일까지 |
해법 4 국민 건강 중심의 역할 확대 및 협력
두 직능의 갈등을 넘어,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대의를 위해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하고 협력하는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약사 인력이 부족한 지역이나 시간대에 한약사가 ‘공공 심야 약국’에 참여하여 국민의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만성질환 관리가 중요해지는 고령화 사회에서 한약사는 한의사, 약사와 협력하여 한약과 건강기능식품, 영양제 등의 올바른 복용법을 안내하고 부작용을 관리하는 ‘건강 주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한방 다이어트, 성장, 면역력 증진 등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 상담을 제공하며 직능의 역할을 확대해 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결국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야말로 모든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입니다.